▲ 대동여지전도

▲ 대동여지전도

명칭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소장품번호 본관(本館)-009776-000
용도 과학기술(科學技術)-지리(地理)
시 대 조선(朝鮮) <1860년대>
크기 111.0x67.5cm
재 질 지(紙)
소 유 자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를 줄여 만든 전국지도로 추정된다. 이 지도는 제작자와 제작 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지도의 내용으로 보아 김정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 역시 <대동여지도>와 같이 연이은 톱니모양으로 산줄기를 그렸고 굵기로 통해 산줄기의 크고 작음을 구분하였다. 하천은 단선으로 된 도로망과 구분하기 위해 쌍선으로 그렸다. 특히 하천에는 조수(潮水)의 영향권을 빗금으로 표현한 점이 독특하다. 각 군현의 정확한 위치와 더불어 도로망도 자세하게 표시하고 있는데, 서울로부터의 거리도 옆에 적어 넣었다. 대동여지도처럼 군사적 항목이 많이 담겨 있다. 팔도의 경계를 점선으로 표시하였고,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형세를 묘사한 글이 쓰여 있다.

$$ \large\bm{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Large\bm{ 발문(跋文)} $$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산맥'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일본인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라는 교과서에서 기인된 것으로, 그 전까지는 '산맥'이란 개념이 없었다.

우리 선조들의 국토 이해 방식은 산맥이 아니라 대간(大幹), 정간(正幹), 정맥이었다.   이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에 입각한 것으로, '산자분수령'이란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는 의미다.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은 일찍이 전통적 지리인식의 바탕에 자리잡아 김정호의「대동여지도」, 이중환의 「택리지」등이 모두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조선 후기 여암 신경준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경표(山經表)」를 통해 개념을 완성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두대간 [白頭大幹]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대동여지전도》의 서문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부분은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어원과 의미를 밝힌 것이고   둘째 부분은 우리나라의 조종산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울까지 이어지는 형세를 설명했으며   셋째 부분은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도리(道里)를수록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도성인 서울의 모습을 묘사하고 찬양했다. (국립지리원,「고산자 김정호 기념사업 연구보고서」(제1권, 2001), pp.84-85.)


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왈 조선음조선 인선수위명 우운선명야 지재동표일선명 고왈조선

《동사》에 이르기를 ○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경운 곤륜일지 행대막지남동 위의무려산 자차대단 위요동지야

《산해경》에 이르기를 ○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 의무려산이 되고 ○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록야기위백두산 위조선산맥지조 산유삼층 고이백리 횡긍천리 기전유담 명위달문 주팔백리 남류위압록 동분위두만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