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ptsize\textsf{ 1. 한국 지도의 고전(고전), 대동여지도}\\\scriptsize\textsf{ 2. 우리나라 최대의 전국지도}\\\scriptsize\textsf{ 3. 경위선표식 축척지도}\\\scriptsize\textsf{ 4. 내용이 풍부하고 지도학적으로 우수한 지도}\\\scriptsize\textsf{ 5. 인쇄본 지도 - 지도의 보급과 대중화}\\\scriptsize\textsf{ 6. 휴대용 절첩식 지도}\\\scriptsize\textsf{ 7. 동양식 전통지도의 집대성, 금자탑}$
1. 한국 지도의 고전(固典),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우리나라 고지도의 대명사이며, 우리나라 지도의 고전이다. 1898년 일본 육군이 조선 침략의 기초 단계로 경부선을 부설하면서 측량기술자 60명과 한국인 2 ~ 3백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1년 간 조선을 샅샅이 뒤져 5만분의 1 지도 3백장 정도를 만들었는데, 『대동여지도』와 큰 차이가 없어 감탄하였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그리고 이어진 일본의 한국 토지측량에 『대동여지도』를 사용하였다는 일화와 함께 『대동여지도』의 정확성과 훌륭함을 전해 주는 증거로 널리 전해 온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는 일본 육군에서 군사지도(兵圖)로 사용하였던 『대동여지도』가 보관되어 있어, 이 이야기가 전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 지도의 발달사를 집대성하기 위해 미국에서 진행중인 세게적인 작업 『지도학사(The History of Cartography)』시리즈(총 8권)의 한국편 서술 「한국의 지도학(”Cartography in Korea)”」(Gari Ledyard 집필)에서도 김정호(金正浩)가 만든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에 가장 많은 내용을 할애하였다.
위와 같은 타국의 평가가 없었다 하더라도,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고지도, 나아가 우리나라 지리학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잇다. 현전하는 『대동여지도』중 성신여대 박물관 소장본은 보물 제 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는 1934년 일제가 교과서에 수록한 이래 남한의 초등학교 교과서와 북한의 중등과정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지리학자, 최고의 지도이다.
『대동여지도』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고지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 관해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 가장 자세하고 가장 큰 지도, 국가의 무관심 속에 김정호 개인이 만든 지도, 『대동여지도』이전에는 훌륭한 지도가 없었던 획기적인 지도,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하며 백두산을 일고 차례나 오르면서 만든 지도, 그러나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 하여 결국 김정호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국가에 의해 불태워진 지도라는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실제로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동여지도』를 일반 집의 벽에 걸 수 잇는 정도의 작은 지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며, 『대동여지도』가 아닌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를 『대동여지도』라고 소개하고 있는 책들도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대동여지도』는 어떠한 지도인가 ?
2. 우리나라 최대의 전국지도
『대동여지도』는 전국지도(全圖)이다. (그림 : 『청구전도(청구전도)』- 목판본(가채), 김정호, 1861년, 22첩, 첩31.2 ×20.2 cm, 지도 660.0 ×410.0 cm,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의 초간본인데 후에 소장자가 채색을 하고, 표지에 지도 제목을 '청구전도'로 바꾸어 붙였다. 그림을 누르면 더 큰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도의 유형을 나눌 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지도에 포함된 대상 지역의 범위에 따라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나눈 지도의 유형에는 세계를 그린 세계지도(또는 天下圖), 한 나라 전체를 그린 전국지도, 도를 단위로 그린 도별지도(道別圖), 군현 및 그 하위 지역을 그린 분도(또는 군현지도), 외국을 그린 외국지도, 주요 도시를 그린 도성도, 궁궐. 관청을 그린 궁궐도(宮闕圖). 관아도(官衙圖), 군사지역과 변경지역을 그린 군사지도인 관방지도(關方地圖), 기타 특수도 등이 있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국을 대상으로 그린 전도이다. 전도는 우리나라 전체를 그린 지도이므로, 다른 어느 유형의 지도보다도 우리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지도로서 의의를 지닌다. 우리나라 전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우리 국토를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바로 전국지도이기 때문이다. 전국지도는 여러 유형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다. 그러므로 각 유형의 지도의 종합이며, 제작 당시 지도학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동여지도』는 현존하는 전국지도 중 가장 큰 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전체를 펼쳐 이으면 세러 6.6m 가로 4.0m에 이르는 대형지도가 되어, 적어도 3층 높이 이상의 공간이 있어야 걸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대동여지도』를 상설 전시해 놓은 곳이 거의 없다. 높이 7m이상의 공간을 갖춘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동여지도』를 잘 볼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지도가 크기 때문에 웬만한 책자에는 『대동여지도』를 수록하기가 힘들었다. 너무 축소되기 때문에 지도의 내용과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책에 수록하기 위한 위한 사진 촬영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책에는 『대동여지도』의 부분만을 수록하곤 하였으며, 이 또한 『대동여지도』의 전모를 일반인들이 보기 힘들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1925년 10월 8, 9일자 동아일보는 김정호에 관한 기사를 싣고, 기사 끝에 조선광문회(朝鮮廣文會)에서 『대동여지도』의 출판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김정호를 위대한 영웅으로 널리 알린 것으로 유명하지만, 조선광문회에서 『대동여지도』를 보급하려 하였음을 보여 준다. 1910년에 설립된 조선광문회는 빼앗긴 국토와 역사의 줄기를 되찾으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 조선 구래의 문헌 도서 중 중개하고 긴요한 자료를 수집, 편찬, 개간하여 귀중한 도서를 보존, 전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니, 『대동여지도』의 출간 의도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으며, 1936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2/3로 축소한 『대동여지도』의 영인본을 간행한 것이 최초의 고지도 영인사업이었다.
이후 『대동여지도』는 여러 차례 영인 간행되었다.( 주 : 1965년에 한국사학회(韓國史學會), 1973년 삼진사(三珍社)가 한국사대계본(韓國史大系本)으로 영인 발행하였고, 1976년에는 1973년의 영인본을 바탕으로 경희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에서 『대동여지도 색인』을 발간하였다. 이어 1985년에 광우당(匡祐堂)에서 원본 크기로 발행을 하였으며, 『대동여지도 별권 색인표』를 함께 간행하였다. 1990년에는 『대동여지도』의 시방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는 「동여도(東輿圖)」(23帖)의 지명을 『대동여지도』에 첨가한 2/3 축소 복간본을 같은 출판사에서 발행하였다. 『대동여지도』에 비하여 7,400여 개가 더 많이 수록된 「동여도」의 지명을 첨가한 『대동여지도 - 동여도 주기 첨가. 축소판』은 면명(面名) 등 7,400여 개의 지명을 별색 활자로 첨가하여 고지명 연구, 지역의 역사지리. 향토사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판매, 간행한 영인본의 경우 모두 원본 크기의 『대동여지도』가 아니라 2/3로 축소된 모습이었던 것도 『대동여지도』의 크기가 컸음을 반영한다. 한국학 관련 학자들과 산악인들이 많이 보고 있는 2/3축소본 『대동여지도』의 경우 지도의 면적은 원본 지도의 44.4%, 즉 원본의 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여서 원본의 위용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시각상의 단점을 지니고 있다.
3. 경위선표식 축척지도
큰 지도가 좋은 지도인가 ?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흔히 조선 후기의 지도학의 성과로 손꼽는 것이 대축척지도(大縮尺地圖)의 발달이다. 지도는 지표면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로 지표 현상을 줄여서 나타내는데, 이 줄인 비율 즉 지도상의 거리와 지표상의 실제거리의 비율을 축척이라고 한다. 대축척지도란 현실을 될수록 크게 종이에 나타낸 지도이며, 소축척지도란 많이 줄여서 현상을 작게 표현한 지도이다. 대축척지도의 제작이 어려운 것은 지도가 커지는 만큼 그 안에 채워야 할 내용이 많으며,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척이 두 배로 커지면 지도의 면적은 네 배로 커진다. 작게 그리면 직선으로 표현된 해안선도 크게 그리면 곡선으로 그려야 하는 것처럼, 대축척지도는 단순히 소축척지도를 확대한 것이 아니다. 크기에 상응하는 정확성과 풍부함을 수반할 때 대축척지도로서의 의의를 지니기 때문이다.